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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쟁을 위해 애국동맹단 결성 ▲ ‘의향의 고장 양동’ 표지석 (양평군 단월면 삼가교차로변) 8.15중추원 의관 출신의 열사 송주면(宋 宙勉, 화순, 1856~1910), 절명시를 남기고 사천평에 몸을 던져 순절 8.17류인석·이범윤, 성명회(聲明會) 결성 하여 합병 반대투쟁 전개 8.22이완용·사내정의(寺內正毅), 한일합병 조약 조인(국권 강탈) 8.25집회금지법령 반포 8.26연해주의 교민, 독립군 결성을 결의 (책임자 이범윤) 8.29한일합병조약 공포. 대한제국을 조선 으로 개칭하고 조선총독부 설치 8.30『대한매일신보』를 『매일신보』로, 『황 성신문』을 『한성신문』으로, 『대한민 보』를 『민보』로, 『대한신문』을 『한양 신문』으로 함(한국을 상징하는 명칭 사용 금지) 8. ‘한일합병’ 직후, 한민교육회는 명칭 을 간민교육회(墾民敎育會)로 바꾸는 한편, 교육회 내에 모범학당을 설립 하여 각지 소학당에 파견할 교원을 양성하도록 함. 간민교육회는 1909 년 말 이후 1910년에 주로 망명한 반일적 진보 인물들 특히 서북학회 회원들이 대거 참여하는 등 점차 세 력을 확장 9.12각 단체 해산령 9.15창평 무동촌, 무등산 전투에서 활약 한 의병장 오성술(吳成述, 광주, 1884~1910), 일경에 체포순국 9.29조선총독부, 동(同)중추원 관제 공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