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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1.초일본군 지평(砥平)분견대의 일부 및 순검 5명은 지평 서남쪽 2.5리의 지 점에서 의병 30명과 접전, 의병 5명 사살, 7명을 포획 〔✒전거〕:조선주차군사령부보고요지(외무 대신) 〔F자료14, 482쪽〕 1.21광주·장성·영광·함평 의병, 연합하여 함평 습격 / 의병장 현덕호(玄德鎬,), 개성에서 전사 1.28이인영(李麟榮)이 이끄는 의병 약 100명이 지평(砥平)에서 일본군 51 연대 2소대와 교전, 사망자 21명, 부상자 30명, 노획품은 소총 7정. 〔✒전거〕:「고종시대사」 1908.1.28.자ㆍ조 선주차군사령부 외무대신에 보고요지 〔F자료6, 308쪽ㆍ자료14, 484쪽〕 1. 군사장 허위는 선발대 300명을 이끌 고 동대문 밖 30리 지점까지 접근, 후속부대를 기다렸으나 일본군이 선 발대에 선제공격에 나섬으로써 선발 대는 후퇴하였고, 총대장 이인영이 부친의 부고로 인해 전열에서 이탈. 결국 13도창의군은 1908년 1월 전 술적 오류와 봉건유생 중심의 계급 성을 안으로 극복하지 못한 가운데 일본군의 선제공격으로 서울진공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깨어짐 2.2의병장 기삼연, 순창 복흥에서 피체 → 광주군 의병, 기삼연을 구출(12) 2.5관동대장이라 칭하는 김경유(金景 有;출신이나 활동상 등이 밝혀지지 않은 의병장;편자 주)가 의병 70명 을 이끌고 북면장 이종덕(李鍾德)·상 북면 고유리장을 잡아가 그 곳 수비 대장 이하 34명이 6일에 토벌에 착 수〔지평군 여물리장(余勿里長) 이건 영(李健永) 보고〕 〔✒전거〕:『대한매일신보』·『황성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