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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 철도파괴음모혐의로 공개처형되는 의병들 (힐버트 『Passing of Korea』에서) 9.259.17 분원동 전투 뒤 조인환의 행방 이 묘연하자 부하들의 추대로 신창 현(申昌鉉)이 의병장이 됨 / 양근 상류 구포 부근까지 일본 토벌대 추 격 〔✒전거〕:「양평지역의 후기의병(1905 ~ 1910」 (논문),홍영기 〔F자료8, 329쪽〕 오후 2시경 양근(楊根) 상류 약 10 리 반 거리인 구포(龜浦) 부근에서 약 2백의 의병이 일군과 조우, 그때 원주 하림대(下林隊)와 수비 교대차 경성(京城)에서 파견된 보병 제51연 대 중대 전변대위(田邊大尉)는 양근 (楊根)을 출발 자포(紫浦)로 향해 행 군 중 신천(新川) 동남 고지 일대를 점령하고 있던 의병 약 3백이 점차 구포 방면으로 전진하자 일군은 1소 대를 구포 방면으로 우회시켜 탕천 소대와 연락, 3면에서 합세 공격을 하여 의병 27명 사살, 의병은 동방 으로 궤주 〔✒전거〕:『조선폭도토벌지』,조선주차군사 령부 〔F자료9, 359쪽〕 9.26 (음8.19) 이남규 부자, 의병 지원 혐의로 일 본군에 피살 순국(장소, 아산시 송 악면 외암리 평촌 냇가) 9.30의병 30명, 양평 순사분파소를 습격 한 뒤 가평으로 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