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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 청송의 독립운동사 송군일대에서 정용기‧정환직‧최세윤 의병장이 이끌었던 의진이다.178) 정환직은 고종의 밀지를 179) 받고 관직에서 물러난 1905년 12월 5일 아들 정용기와 함께 거의의 뜻을 모으고 고향인 영남에서 창의하기로 하였 다.180) 1906년 3월 그의 아들 정용 기는 이한구李韓久‧정순기鄭純基‧손 영각孫永珏 등과 함께 경상도 전역 을 망라하여 천여 명의 의병을 모 집하였다. 즉 남으로는 밀양과 울 산, 북으로는 봉화와 영양에 이르 기까지 경상남‧북도 전역 24개 지 방, 79명으로 구성된 지방연락책임 자와 활동책임자를 정하였다. 그리 고 진호를 산남의진이라 하고, 다 음과 같이 진영을 편성하였다.181) < 部 署 > ◦倡義大將 鄭鏞基 ◦中 軍 將 李韓久 ◦參 謀 將 孫永珏 ◦召 募 將 鄭純基 ◦都 總 將 李鍾崑 ◦先 鋒 將 洪龜燮 178) 裵勇一, 「山南義陣考- 鄭煥直‧鄭鏞基 父子 義兵將活動을 中心으로-」,《浦港 專門大學論文集》第6集, 1982; 「崔世允 義兵將考」,《史叢》第31輯, 1987; 「山 南義陣考」,《한국민족운동사연구》제5집, 한국민족운동사연구회, 1991; 權寧培, 「山南義陣(1906∼1908)의 組織과 活動」,《歷史敎育論集》第16輯, 경북대, 1991. 179) 山南倡義誌 卷一, <帝宮에서 密旨拜受> “卿이 和泉之水을 知乎아 朕望 이라”는 密詔를 발한다. 180) 山南倡義誌 卷一, 「都察使父子議論」. 181) 山南義陣遺史 , 257-259쪽. < 삼남의진 기념비; 영천시 문화원내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