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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장 의병항쟁 / 87 시 김산의진에 참여한 바 있는 양제안은 산남의진에 참여하여 활동하면 서 덕유산을 중심으로 우로는 문태수와 연결하여 지리산을 장악하고, 좌 로는 이강년과 연결하여 조령‧태백산‧소백산 일대를 장악하는 유격전을 구상하기도 하였다.177) 따라서 후기의병사에 있어서 가장 주목되는 서울진공을 목표로 한 13 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의 의병연합진영 결성은 창의 초기부터 각 의 병장들이 구상한 의진 상호간의 연합이나 제휴의 결실이라는 의미를 가 진다고 하겠다. 그러나 후기의병에 있어서 커다란 분수령이 되는 것은 1907년 7월 19일 고종의 강제퇴위와 7월 31일 군대해산이다. 무엇보다 일본군이 의병토벌을 전담하고 해산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함으로써 의진은 종래 관군을 상대로 했던 소극적이며 미숙한 항전방법을 탈피하였다. 특히 1907년 이후 일본군 의 의병토벌작전이 광범히 전개되면서 대부대를 이끌고 활동하던 경상도 의 이강년‧신돌석‧최세윤, 전라도의 고광순이 전사하자 예하 부대장이었던 전성범(거창)‧김상태‧박연백(의성)‧이춘양(문경)‧박인화(예안)‧강진선(청 송)‧서종락徐鍾洛(청송)‧유종환‧권석도 등은 독립된 소규모의 부대를 이끌 고 게릴라적인 유격전을 통해 항전을 계속하였다. 2. 청송지역의 중‧후기의병 1) 산남의진과 청송지역 ① 산남의진(1차)의 창의와 청송지역의 참가 산남의진은 1906년 3월부터 1908년 7월까지 경북의 영천永川‧영일迎日‧청 177) 梁漢緯, 梁碧濤公濟安實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