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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 청송의 독립운동사 여중룡‧이병구‧우용택 등이 창의를 모의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허위는 안 동을 중심으로 강원도 일대, 이강년은 상주를 중심으로 충청도 일대, 여중 룡은 김산을 중심으로 전라도 일대를 거쳐 의병장 최익현과 합세하여 경 성에 모여 통감부를 격파하기로 맹서하고 창의를 준비하기 시작하였 다.171) 이리하여 여중룡은 향리인 김산에서 창의를 계획하였으나 병으로 실패하였고, 허위는 경기도에서, 이강년은 문경에서 창의하였다. 뿐만 아니라 허위의 경우, 그는 경기도 연천에서 창의하면서 정환직‧정용 기 부자를 독려하여 영천지방에서 창의하여 산남의진을 결성토록 하였고,172) 윤정의와 서병희를 독려하여 청도‧경주‧양산 등 경남‧북 접경지대에서 창 의토록 하여, 이들을 연결하여 의병부대간의 연합작전을 계획하였다.173) 이와 같이 의병부대간의 연합작전이나 통합의진의 구상은 창의 초기부터 제기된 것이었다. 또 이러한 구상은 의병의 열기가 확산되면서 더욱 구체화 되었다. 산남의진의 경우 정환직이나 정용기는 창의초부터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기 위한 북상계획을 실현한다는 목표하에 작전을 수립하였다.174) 또 신돌석의진의 경우에도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기 위해 강원도 양구까지 진출하여 민긍호‧이인영‧정환하‧오영교 등과 연합하여 양구수비대를 습격 하려다 실패하고 회진하였다.175) 이강년의진의 경우에는 이인영의 통문을 받고 북상을 시도하였으나 일본군의 저지로 실패하였다.176) 또 을미의병 171) 呂中龍, 「乙巳日記」, 南隱先生遺集 卷之二. 172) 山南倡義誌 上 卷之一. 173) 金正明 編, 警秘收 第279號 隆熙 3년 12월 14일, 「義兵將徐炳熙‧炳逮捕의 件」, 朝鮮獨立運動 , 국학자료원, 1999, 105쪽. 174) 「都察使父子論議」, 山南倡義誌 上. 175) 金正明 編, 「韓國暴徒討伐誌」, 朝鮮獨立運動 1, 국학자료원, 1999, 174쪽; 국사편찬위원회, 「暴徒에 關한 編冊」, 韓國獨立運動史 資料8 (義兵篇 Ⅰ), 정음문화사, 1983, 422-423‧428-429쪽. 176) 李求鎔, 「雲崗 李康秊의 抗日義兵活動」,《江原史學》第7輯, 강원사학회, 1991; 鄭濟愚, 「舊韓末 義兵將 李康秊 硏究」, 인하대 박사학위논문,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