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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장 의병항쟁 / 85 광범한 양반유생의 지지 속에 봉기한 것이 아니라, 유능한 의병장을 중심 으로 해산군인 등 다양한 신분 계층이 의진을 주도하였다. 경상도지방의 후기의병은 전기의병에서 활동한 의병장의 투쟁이 두드러 지게 나타나고 있다. 전기의병 때 문경에서 창의하여 호좌의진에서도 활동 한 이강년,164) 김산의진의 허위‧양제안梁濟安, 165) 안동의진의 이상룡李相龍 ‧유시연, 영양의진의 김도현,166) 진주의진의 노응규盧應奎, 167) 영해출신으로 영덕의진에 참가했던 신돌석,168) 흥해출신으로 안동의진에 참여했던 최세 윤 169) 등이 창의의 기치를 들고 있다. 즉 허위는 1907년 경기도 연천에서 재거하였고, 양제안은 민종식의 홍 주의진에 참여했다가 산남의진에 참여하였다. 이상룡은 박경종과 가야산 에 군사기지의 축조를 계획하였으며, 유시연은 청량산에서 창의하여 신돌 석‧김도현‧이강년 등과 연결하여 활동하였다. 을미의병시 안의에서 창의하 였던 진주의진의 노응규는 1906년말 충청도 황간에서 재기하였다.170) 또 신돌석은 영덕에서 창의하였고, 최세윤은 산남의진에 참여하였고, 김도현 은 영양에서 창의하였다. 그리고 후기의병에서 비로소 창의한 의병장은 정 환직‧정용기 부자, 진보의 이하현 등이 있었다. 1905년 9월 창의하는 김도현을 필두로 전개된 후기의병이 본격화되는 것은 1906년 5월 5일 당시 상경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던 허위‧이강년‧ 164) 朴貞洙, 雲崗先生倡義顚末 卷之一. 165) 權大雄, 「金山義陣考」, 尹炳奭敎授華甲紀念 韓國近代史論叢 , 지식산업사, 1990. 166) 金道鉉, 「碧山先生倡義顚末」, 한국독립운동사자료집 제2집, 독립운동사편찬 위원회, 1970, 719쪽. 167) 許善道, 倡義將愼菴盧應奎先生抗日鬪爭略傳 (등사본), 1967. 168) 盈德郡, 盈德郡誌 , 영덕군, 1981, 609쪽. 169) 金道鉉, 「碧山先生倡義顚末」, 한국독립운동사자료집 제2집, 독립운동사편찬 위원회, 1970, 36쪽. 170) 許善道, 倡義將愼菴盧應奎先生抗日鬪爭略傳 (등사본), 19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