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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 청송의 독립운동사 광열李光烈‧유시연 등이 봉기하여 영양‧청송‧안동‧의성 일대에서 활동하 였고, 예천의 장윤덕張胤德‧영양의 김도현‧진보의 이하현李夏鉉 등도 봉기 하였다.160) 그 외에 김상태金尙台(소백산 일대)‧박연백朴淵伯(의성일대)‧이 춘양李春陽‧박인화朴仁和‧강진선姜進善 등이 경북 북부지역, 권병호權炳瑚는 경산‧청도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한편, 경상남도에서는 1907년 안의에서 봉기한 문태수文泰洙가 덕유산을 근거로 영남‧호남‧호서에 걸쳐 활동하였다. 그 외에도 가야산과 지리산을 근거로 맹활약한 서명국 徐明國, 1908년 양산의 서병희徐炳熙, 1909년 거창의 전성범全聖範, 산청의 박동의朴東義, 하동의 이백응李白應, 진주의 유종환兪宗 煥, 함양의 권석도權錫燾‧석상룡石祥龍 등이 봉기하였다.161) 그리고 을미의 병시 전라도에서 창의한 김동신도 재기하여 지리산을 중심으로 경남 서부 지방에서 활동하였다.162) 경상도에서 후기의병의 창의 경위는 전기의병과 자못 달랐다. 전기의병 은 보수적인 유림사회가 가지고 있는 지연적‧학문적‧혈연적인 전통 위에 서 전개되는 데 비해, 후기의병은 지연적 기반 위에 보다 광범한 신분계 층이 참여하고 있다. 즉 초기 창의단계에 있어서 전기의병은 영남지방의 보수적인 유림사회의 조직기반인 향교 등을 통해 광범한 연합의진으로 결성되고 있으나, 후기의병은 지역을 단위로 하여 독립된 조직을 형성하 고 있다. 물론 1906년 청송‧의성‧안동‧진보‧의흥향교가 창의통문을 발하 여 의병 봉기를 고무하고 있는 예가 있기는 하지만,163) 전기의병 때처럼 160) 愼鏞廈, 「全國 ‘十三道倡義大陣所’의 聯合義兵運動」,《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1집,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7. 161) 愼鏞廈, 「全國 ‘十三道倡義大陣所’의 聯合義兵運動」,《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1집,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87, 11쪽. 162)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제2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589-593쪽. 163)《皇城新聞》 光武 10년 5월 8일자, ‘慶北義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