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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장 의병항쟁 / 83 제3절 청송의 중‧후기의병(1906∼1908) 1. 중‧후기의병의 전개 상황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을 계기로 1906년부터 민종식閔宗植‧정용기 鄭鏞基‧최익현崔益鉉‧신돌석‧김도현 등이 봉기하기 시작하여 정환직鄭煥直‧ 고광순 高光洵‧백락구白樂龜(일명 락구樂九)‧박장호朴長浩 등이 기의하였다. 그후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에 따른 고종의 퇴위, 군대해산 등 일련의 망 국사태가 이어지면서 이강년‧민긍호閔肯鎬‧허위‧김동신金東臣‧이인영李麟榮 ‧기삼연奇三衍‧이석용李錫庸‧이진용李鎭龍 등이 조직한 대규모의 연합의진 이 전국 각처에서 결성되었다.156) 후기의병의 확산 속에서 경상북도 지방의 의병투쟁은 매우 활발하였다. 신돌석은 1906년 3월부터 1908년 11월까지 경상북도 북부와 강원도 남부 의 접경지대인 일월산과 동해안 일대를 무대로 활약하였다.157) 그리고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정용기‧정환직‧최세윤崔世允은 1906년 3월부터 1908년 7월까지 경북의 영천‧청송‧영일 등지에서 활동하였다.158) 이강년은 1907 년 4월 재기하여 1908년 7월까지 경상북도‧충청북도‧강원도의 3도 접 경지대를 중심으로 문경‧단양‧영춘‧영월 사이의 약 200리 선을 주축으 로 한 소백산맥과 차령산맥 사이, 소백산맥 북쪽을 주전투장으로 활약 하였다.159) 특히 신돌석의진은 이강년의진이나 산남의진과 밀접한 연계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안동의 백남규白南奎(안동분견대 부위)‧이 156) 「暴徒槪況」, 暴徒編冊 3호. 157) 김정미, 「한말 경상도 영해지방의 의병전쟁」,《大丘史學》第42輯, 大邱史 學會, 1991. 158) 裵勇一, 「山南義陣考」,《한국민족운동사연구》제5집, 한국민족운동사학회, 1991, 141쪽. 159) 洪淳鈺, 「義兵 李康秊部隊 戰鬪考(1907∼1908)」,《軍史》5, 國防部戰史編纂 委員會,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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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절 청송의 중,후기의병(1906~1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