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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장 의병항쟁 / 71 나 적병이 사방을 포위하니 적에 저항하기가 불가하였으므로 다시 盈德 으로 향하였다. 적진을 떠나 겨우 官基에 이르러 적과 마주쳐 싸워 패하 니 포정은 모두 도망하고 남은 자는 거의 없었을 따름이다. 피눈물을 흘 리며 普賢山으로 들어갔다. 云云131) < 화전등 전투도> 부동면 상평 뒷산에서 벌어진 화전등전투에서 청송의진은 관군의 기습 공격을 받고 6명의 전사자를 남긴 채 패퇴하였다. 이들은 청송의진의 영 덕출진소가 영덕전투 패전 후 귀환하였던 의병부대였다. 당시 김도현부대 는 덕천에서 마평을 거쳐 대전으로 향하던 중 관군이 들어오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말머리를 돌려 청운‧청송읍‧월전月田‧흥구 등지를 거쳐 영양 으로 돌아갔다.132) 이와 같이 청송의진은 해산 이후에도 흥해출진소와 영덕출진소를 통 해 주변 의진과 연합작전을 전개하였다. 특히 이천의진과는 끝까지 서로 연 131) 趙性吉, 「丙申年倡義記」, 白雲詩集 (미간행 필사본). 132) 金道鉉, 「碧山先生倡義顚末」, 독립운동사자료집 제2집, 독립운동사편찬위 원회, 1970, 724-7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