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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 청송의 독립운동사 진은 7월 16일경(음 6. 3) 청송으로 들어와 화장동花場洞에 진을 치고 있 었던 중 7월 20일경 관군의 공격을 받아 크게 패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청송의진은 이천의진을 돕기 위해 청운에서 화장으로 행군하여 나아가던 중 마평馬坪(부동면 상평동)의 화전등花田嶝에 이르러 관군의 기습을 받고 교전하였다. < 화전등 전투지 전경> 이 전투가 청송의진의 소위 ‘화전등전투花田嶝戰鬪’인데, 조성길의 「병신 년창의기丙申年倡義記」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라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귀화를 한다는 것은 적들과 같다. 다시 義旅 를 독려하여 일을 도모하기로 기약하고 本郡으로 들어오니 군수와 관졸 들은 모두 도피하였다. 그리하여 그 날로 군사를 돌이켜 靑雲驛에 유진 하니 홀연히 利川陣이 花場洞에서 패하여 가히 몰사하였다고 함으로 이 날 밤 즉시 화장동으로 향하여 나아갔다. 겨우 馬坪에 도달하여 날이 밝 아오는데 적진과 마주쳐서 종일토록 싸웠으나 세력이 모두 소진하여 부 득이 패주하니 죽은 장졸이 6인이었다. 다시 피로한 병사들을 떨쳐 세워 慶州로 향하니 겨우 仁夫(永川 仁比 : 필자주) 등지에 도달하였다. 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