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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장 의병항쟁 / 43 의병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내부적으로 경제적 으로나 계급적인 측면에서 많은 갈등의 요인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므 로 양반유생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예속 하에 있던 농민층 을 의병부대의 주력으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의진 내에서 농민들은 전투요원과 비전투요원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소수의 전투요원을 제외하면 대부분 비전투요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전투요원이라 할지라도 농민들은 군량‧탄약‧군마‧군수전 등의 군수품軍需品을 운반하는 일을 담당하여 의병의 기세를 돋구는 역할을 함 으로써 의병부대의 주력을 형성하였다. 한편, 청송의진의 경우에는 부 4면과 현 5면의 각 지역 외방장이 거느리 고 있는 면군이 있었다. 이 외방장의 친군親軍, 즉 면군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3월 초9일 府西外防將 沈宜喆이 친군 수십인을 거느리고 왔으므로 술 한 동이와 북어 한꿰미를 주었다. 3월 30일 아침에 전령을 현서‧현내‧현북‧부서면의 면임과 집강에게 보내 대소민인이 각기 장정을 뽑아 무기를 소지하고 요충지를 방어하라고 하 였다. 4월 초3일 오전에 府西外防將 沈宜喆이 친군 10여 명을 거느리고 밤을 무릅쓰고 와서 머물럿다. 面軍이 사방에서 구름 같이 모이니 역시 우리 의군을 확장하기에 족하였다.56)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군사적 의미에서 의진의 외곽을 형성하고 있 는 면군체제는 외방장의 지휘하에 있는 외곽부대로써 정보수집‧ 지역방어 ‧본진후원 등의 군사적 활동과 도적의 방비 등 공백으로 남겨진 행정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면군은 각 면지역의 방어와 치안을 담당하여 본진을 후원하고 있었다. 56) 沈誠之, 赤猿日記 (필사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