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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 청송의 독립운동사 태(서기)‧서효원(의영도지휘사)‧서효신(우익장)‧서효격(서기)‧서효달(향 원)‧김숭진(서기)‧오세로(참모장)‧심능규(참모) 등이 있다. 그외에 심성 지(대장)는 유양흠의 문인이었고 심봉지沈鳳之와는 함께 학문을 연마하였으 며,47) 심호택沈琥澤(향원)은 석사石舍 유기호柳基鎬 문인, 신필호(백의종사) 는 호고와好古窩 유휘문柳徽文의 문인이었다.48) 그리고 청송의진 참여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정재학파를 사승하고 있는 인물은 이돈우李敦禹의 문인 심우택沈瑀澤, 김흥락의 문인 신상극申相極‧김진 성金鎭聲‧권상술權商述, 김도화의 문인 서석화徐錫華, 유치구의 문인 남석영‧ 오세주吳世周, 신진운의 문인 심능걸沈能杰‧심면지沈冕之, 심응지沈應之의인 장병두 등이 있다.49) 이들은 정재학파를 사승하고 있는 청송유생으로 청송의 진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외에 학통적인 사승관계는 알 수 없으나 청송의진에 참여하고 있는 인물로 조규락(지휘사)‧조독호(참모)‧남구석(향원)‧조성로(참모)‧심의화 (장재도총)‧김진만 金鎭萬(모량도감)‧남기철(향원)‧김상길(우익장)‧심능장 (소모장)‧조성규(향원)‧장풍호(참모)‧조광규(참모)‧장한탁(유생) 등이 청 송지역에서 문명을 떨치고 있다. 조독호(참모)‧김태진(향원)‧남승철(사병도총)‧정진도(진무장) 등은 문집 을 남기고 있다.50) 뿐만 아니라 김태진‧서효원‧심성지‧서석화‧조규진‧조 성태 등은 김흥락을 비롯하여 김도화 등과 활발히 교유하고 있다.51) 47) 沈誠之, <行狀>, 「附錄」, 小流集 卷四. 48) 靑杞誌 , 1937. 49) 靑杞誌 , 1937. 50) 靑杞誌 , 1937. 51)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文集解題 (1988)의 金道和, 拓菴集 과 金 興洛, 西山集 의 「書」부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