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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 청송의 독립운동사 (나) 진용의 정비 우선 청송의진의 지휘부는 군비의 효율적인 모집과 운용을 위해 다음 과 같이 진용을 정비하고 있다. 향론으로 임원이 너무 많아 점점 일을 돈독히 하는데 무익하고 재정만 손실되니 爬任의 정수를 고쳐 각 진영을 합해 3營으로 하고, 참모는 4원, 서기는 6원으로 하니 대개 간략히 하고 비용을 줄이는 것을 위주로 하 였다.28) 신동호申東鎬와 같은 유생은 의진의 직책과 그 역할을 매우 정확하게 인식하고 진용을 편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의진 좌목에 대장은 군사 가운데 어른이며, 부장은 위에서 다음으로 서로 짝을 이룬다는 뜻이다. 참모‧서기‧종사관은 군문에 있어서 손님과 주인의 예가 있음과 같다. 내영은 중군과 좌‧우익장, 전‧후방장, 외영은 사병도총‧소모장‧진무이다. 그리하여 그 차례를 말하면 도총은 중군의 우측에 있어야 하고, 유격장과 돌격장은 모두 출진시에 장수가 된다.”29) 청송의진의 각 부대는 창의장을 중심으로 편성된 상영上營(總營 혹 內營) 과 그 아래 각영 各營(혹 外營)으로 편제되어 있다. 따라서 상영은 대장을 중심으로 부장, 그 아래 중군과 좌‧우익장으로 편제되었으며, 각영은 사 병도총과 소모장으로 편제되었다. 구성원 중 대장 심성지‧부장 조성박‧중군 김대락‧좌익장 김상길‧우익장 남두희‧전방장 윤정우尹楨禹‧후방장 장무호蔣武鎬‧사병도총 남승철南昇喆‧ 소모장 심능장沈能璋‧선봉장 홍병태洪秉泰‧의영도지휘사 서효원 등은 창의 초기부터 해산까지 의진을 이끌어간 지휘부에 해당한다. 물론 이중에서 28) 沈誠之, 赤猿日記 (필사본), 1896년 2월 23일자. 29) 沈誠之, 赤猿日記 (필사본), 1896년 3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