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page

350 / 청송의 독립운동사 [참고문헌] 山南倡義誌 下卷 73쪽, 判決文(1910. 7. 25), 獨立運動史(國家報 勳處) 第1卷 351·389·390·579쪽,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247쪽. 69. 장무호蔣武鎬 : 1852. 11. 9~1926. 5. 6.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의병활동 을 전개하였다. 1896년 3월 안동의진의 소모장인 유시연柳時淵이 청송에 들어와 군기를 요구하고, 외지에서 거의를 촉구하는 격문이 전해지자 유 림들은 토적복수討賊復讐를 기치로 의진결성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청 송향교에 유림 200여 명이 모여 거의를 결의한 후 심성지를 대장으로 추대하고, 김대락金大洛을 중군장, 남두희南斗凞를 우익장, 서효신徐孝信 을 소모장에 임명하는 등 진용을 갖추었다. 장무호는 이때 후방장後防將 에 선임되었다. 1896년 5월 14일 청송의진은 김상종金象鍾 및 김하락의진金河洛義陣과 연 합하여 감은리甘隱里 뒷산에서 관군 7∼8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계속해서 마평馬平과 경주 인부人夫 등지에서 교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 로 패전하였다. 같은 해 5월 그는 좌익장 권성하 등과 함께 3초哨의 군 사를 이끌고 영덕의진을 지원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赤猿日記(毛筆草本). 70. 장한탁蔣漢倬 : 1852. 1. 1~1930. 1. 11.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의병활동 을 전개하였다. 1896년 3월 안동의진의 소모장인 유시연柳時淵이 청송에 들어와 군기를 요구하고, 외지에서 거의를 촉구하는 격문이 전해지자 유 림들은 토적복수討賊復讐를 기치로 의진결성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청 송향교에 유림 200여 명이 모여 거의를 결의한 후 심성지를 대장으로 추대하고, 김대락金大洛을 중군장, 남두희南斗凞를 우익장, 서효신徐孝信 을 소모장에 임명하는 등 진용을 갖추었다. 이어 군량을 수합하고 군사 를 소모하여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군세확장에 힘을 기울였다. 장한탁 은 송천지역 유림들의 모임인 도회소道會所에 파견되어 신임 관찰사에 관한 민정을 수집하는 등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