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page

부록; 독립유공포상자 열전 / 343 57. 윤성택尹成澤 : 1926. 5. 2~1957. 1. 1. 1941년 6월 일본 경도부京都府 철희군綴喜郡 전변정田邊町 소재 도촌島村 토공반장내 한국인 토공으로 일하는 김경원金京元·김말도金末度·김석원金碩元·이상문李相文 등과 함께 한국인이 취직은 물론 모든 면에서 차별과 억압을 받고 있는데, 이 악 조건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조국의 독립밖에는 없으므로 실력을 양성하 여 독립을 위하여 활용하는데 대비하기로 하고 항일활동을 협의하였다. 그리하여 1942년 6월 민족의식을 고취하며 동지를 규합하고 전시하에 일본의 피폐를 이용하여 독립운동의 봉화를 올릴 것 등의 목표를 위해 활동하다가 피체되었다. 1945년 9월 18일 경도지방재판소에서 예심이 종 결되어 송국하였다. 동년 9월 27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형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 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豫審終結 및 判決送達書(京都地方裁判所), 獨立運動史資料集 (國家報勳處) 別集 第3輯 267-270쪽. 58. 윤자영尹滋瑛(이명; 鄭一英‧尹滋暎‧尹錫漢‧安東‧不可殺) : 1894. 9. 13∼ 1934. 1919년 경성전수학교에 재학 중 서울지역 학생운동 지도부의 일 원으로서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11월 경성지법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다가 1920 년 7월 출옥했다. 출옥 직후 조선청년회연합회 기성회에 참여하여 지방부 위원이 되었다. 그해 12월 조선청년회연합회 창립총회에서 서무부 상임위원으로 선임되 었다. 1921년 1월 서울청년회 결성에 참여하고 이사가 되었다. 4월 조선 청년회연합회 제2차 총회에 참석하여 집행위원 겸 교무부 상무위원에 선임되었다. 5월 고려공산당(상해파)에 입당하고 이후 상해에서 고려공 산당 기관지《효종曉鍾》과《투보鬪報》편집에 참가했다. 1922년 10월 베르후네우진스크에서 개최된 고려공산당 연합대회에 출석 하여 대회 의장단의 일원으로 선출되었다. 1923년 1월 고려공산당 코민 테른 파견 대표단의 일원으로서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코민테른에 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