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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 / 청송의 독립운동사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赤猿日記(毛筆草本). 52. 심훈沈勳 : 1929. 1. 16~. 1943년 8월 경, 경북 안동의 안동농림학교安 東農林學校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조선회복연구단朝鮮恢復硏究團의 단 원으로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심훈을 비롯한 안동농림학교의 제8·9·10회생들은 일제의 부당한 식민지 통치에 항거하기 위해 조선회복연구단을 조직하였다. 이 조직은 민족의 식 고취에 머물지 않고,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일제의 후방을 교란시키는 계획을 수립하여, 안동시내의 일본인 기관 및 요인의 습격 등을 투쟁 방 침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심훈 등은 1945년 3월 10일 소위 일본육군기념일에 총궐기하 기로 계획을 세우고 거사를 추진해 갔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이 사전에 발각됨으로써 심훈을 비롯한 단원 전원이 피체되었다. 그는 옥고를 치르 다가 광복과 더불어 1945년 8월 16일 대구지방검찰청 안동지청에서 출 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刑事事件簿, 安東農林學生抗日略傳(安東農林高等學校同窓會, 1978) 15·16쪽, 대구경북항일독립운동사(광복회 대구경북연합지 부, 1991) 307쪽, 安東版獨立史(金乙東, 1985) 334·369쪽, 안동 광복지사기념비(1981). 53. 오세로吳世魯 : 1852~1900.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896년 3월 안동의진의 소모장인 유시연柳時淵이 청송에 들어와 군기를 요구하고, 외지에서 거의를 촉구하는 격문이 전해지자 유림은 토적복수 討賊復讐를 기치로 의진결성을 추진하였다. 이어 청송의진은 군량을 수 합하고 군사를 소모하여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군세확장에 힘을 기울 였는데, 오세로는 이때 참모에 선임되었다. 1896년 5월 14일 오세로는 중군장 김대락과 함께 청송의진의 주력부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