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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독립유공포상자 열전 / 339 50. 심의화沈宜華 : 1840. 7. 8~1921. 4. 4.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896년 3월 안동의진의 소모장인 유시연柳時淵이 청송에 들 어와 군기를 요구하고, 외지에서 거의를 촉구하는 격문이 전해지자 유림 은 토적복수討賊復讐를 기치로 의진결성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청송향 교에 유생 200여 명이 모여 거의를 결의한 후 심성지를 대장으로 추대 하고, 김대락金大洛을 중군장, 남두희南斗凞를 우익장, 서효신徐孝信을 소 모장에 임명하는 등 진용을 갖추었다. 심의화도 이때 참여하여 장재도청 掌財都廳에 선임되어 군자금 모집 등의 역할을 맡았다. 1896년 5월 14일 청송의진은 김상종金象鍾 및 김하락의진金河洛義陣과 연합하여 감은리甘隱里 뒷산에서 관군 7∼8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 다. 계속해서 마평馬平과 경주 등지에서 교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 전하였다. 같은 해 5월 청송의진은 영덕의진을 지원하는 등 인근지역의 의진과 연계하여 활동하기도 하였으나, 고종의 해산 조칙에 따라 해진 解陣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赤猿日記(毛筆草本). 51. 심진택沈瑨澤 : 1864~1933. 11. 8.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전 개하였다. 1896년 3월 안동의진의 소모장인 유시연柳時淵이 청송에 들어 와 군기를 요구하고, 거의를 촉구하는 격문이 전해지자 유림들은 토적복 수討賊復讐를 기치로 의진결성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청송향교에 유림 200여 명이 모여 거의를 결의한 후 심성지를 대장으로 추대하고 진용을 갖추었다. 심진택은 이때 안동의진과의 연락 등을 맡아 활동하였다. 1896년 5월 14일 청송의진은 김상종金象鍾 및 김하락의진金河洛義陣과 연 합하여 감은리甘隱里 뒷산에서 관군 7∼8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계속해서 마평馬平과 경주 인부人夫 등지에서 교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 로 패전하였다. 같은 해 5월 청송의진은 좌익장 권성하 등으로 하여금 3초 哨의 군사를 이끌고 영덕의진을 지원케 하는 등 인근지역의 의진과 연 계하여 활동하기도 하였으나, 고종의 해산 조칙에 따라 해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