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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독립유공포상자 열전 / 337 소모장에 임명하는 등 진용을 갖추었다. 이때 심능찬은 부친인 심성지를 도와 활동하였다. 심능찬은 청송의진의 군관軍官으로 활동하면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 였다. 게다가 남승철南昇喆 등과 함께 의병을 사칭하여 민폐를 끼치는 자들을 응징하기도 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赤猿日記(1896). 47. 심성지沈誠之 : 1831. 12. 18~1904. 11. 12. 경북 청송에서 창의하여 의 병장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1895년 을미사변를 전해 듣고 비분강개하였 다. 더욱이 일제와 친일정권에 의해 단발령까지 강행되자, 이에 대한 반 감이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그러던 중 1896년 3월 안동의진의 유시연柳 時淵이 포수20여 명을 대동하고 청송으로 와 군기를 요구하고, 외지에서 는 거의 촉구 격문이 날아들고 있었다. 이에 청송유림들은 향회를 개최 하여 그를 청송의진 대장에 추대하였다. 1896년 5월 대구에서 관군이 의병을 토벌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심성 지는 중군장 김대락에서 포정砲丁 60명을 이끌고 감은리甘隱里의 뒷산을 지키도록 하였다. 청송의진은 의성‧김하락의진과 연합하여 감은리의 뒷 산에서 관군과 전투를 벌였으며, 관군 7∼8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 다. 이처럼 심성지는 청송의진을 이끌어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고종 의 의병 해산조칙이 내려짐에 따라 의진을 해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赤猿日記(筆寫本, 1896), 소류정심공묘지명(의군부도사 문소 김도화찬), 仁山先生文集(1978) 下卷 57-61쪽, 靑松의 香氣(靑 松郡, 1982) 52·53·75·80쪽, 靑松郡誌(靑松郡, 1990) 66-68쪽. 48. 심의철沈宜喆 : 1856. 11. 30~1909.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의병전개활동 을 전개하였다. 1896년 3월 안동의진의 소모장인 유시연柳時淵이 청송에 들어와 군기를 요구하고, 외지에서 거의를 촉구하는 격문이 전해지자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