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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독립유공포상자 열전 / 327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고종의 해산 조칙에 따라 해진解陣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赤猿日記(毛筆草本). 30. 민인호閔仁鎬 : 1854~1925. 11. 28.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전 개하였다. 1896년 1월 안동의진의 소모장인 유시연柳時淵이 청송에 들어와 군기를 요구하고, 외지에서 거의를 촉구하는 격문이 전해지자 유림들은 토 적복수討賊復讐를 기치로 의진결성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청송향교에 유 림 200여 명이 모여 거의를 결의한 후 심성지를 대장으로 추대하고, 김대 락金大洛을 중군장, 남두희南斗凞를 우익장, 서효원徐孝源을 의영도지휘사義 營都指揮使로 임명하는 등 진용을 갖추었다. 이때 민인호는 척후장斥候將에 선임되었다. 1896년 4월 14일 청송의진은 김상종金象鍾 및 김하락의진金河洛義陣과 연 합하여 감은리甘隱里 뒷산에서 관군 7∼8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계속해서 마평馬平과 경주 인부人夫 등지에서 교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전하였다. 이후 청송의진은 좌익장 권성하 등으로 하여금 3초哨의 군사 를 이끌고 영덕의진을 지원케 하는 등 인근지역 의진과 연계하여 활동하 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고종의 해산 조칙에 따라 해진解陣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赤猿日記(毛筆草本), 靑松郡誌(靑松郡, 1990) 455쪽. 31. 민춘기閔春基 : 1922. 5. 19~ . 1939년 4월 일본 대판大阪으로 도항하여 관서공학교關西工學校·경도성봉중학교京都聖峰中學校에 다니면서 경도한국 인유민생회京都韓國人留民生會에 입회하여 민족의식을 계몽 받으면서 민 족독립운동의 지도자가 될 결심을 하였다. 이후 1941년 6월 대판 북구北區에서 신문배달원으로 일하고 있던 중, 동년 8월 대판공학교大阪工學校에 다니는 정규식鄭圭植이 고용되자 그에게 민족 의식을 고취시켜 한국민족독립을 위해 헌신할 것을 상호 맹세하는 한편, 민족운동 관련서적을 탐독하면서 손문孫文의 삼민주의에 착안한 민족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