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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독립유공포상자 열전 / 317 키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청송·의성·김하락의 연합의진은 마을 앞에 진을 치고 관군의 공격을 막았다. 연합의진은 치열한 전투 끝에 관군 7∼8명 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청송의진은 고종의 의병 해산조칙이 내려져 의진을 해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赤猿日記(筆寫本, 1896). 10. 김의성金義聖 : 1880~1909. 6. 1907년 9월 신돌석의진申乭石義陣에 참여 하여 경북 안동군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08년 1월 10일에는 20여 명과 함께 안동군 동산령東山嶺에서 일인日人 에게 협조하는 김선이金先伊를 죽였고, 동년 6월 15일에는 동군의 금당 산金塘山 달곡達谷에서 일인에게 협조하는 김한철金漢哲을 총살하였다. 그러나 이후 일경에게 피체되었다. 김의성은 1909년 7월 27일 고등법원에서 교수형이 확정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496-498쪽. 11. 김재수金在水 : 1876~1909. 3. 1907년 10월 15일부터 동년 12월 5일 사이 에 박연백의진朴淵伯義陣에서 소모장召募將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경북 신녕군新寧郡·안동군·청송군 일대에서 정진사鄭進士·권대방權大房·김명원金 明元·김연전金延前 등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피체되었다. 이후 1909년 4월 8일 고등법원에서 교수형으로 형이 확정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488·489쪽. 12. 김진구金鎭九(이명; 鎭方) : 1854~1914. 10. 23.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896년 3월 안동의진의 소모장인 유시연柳時淵 이 청송에 들어와 군기를 요구하고, 외지에서 거의를 촉구하는 격문이 전해지자 유림들은 토적복수討賊復讐를 기치로 의진결성을 추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