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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 청송의 독립운동사 分冊 505쪽,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92·458쪽, 韓國獨立史(金承 學) 下卷 82쪽,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174쪽, 獨立運動 史(國家報勳處) 第7卷 257·344쪽,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 處) 第10輯 1105쪽. 4. 권용이權龍伊 : 안동군 임동면삼일운동에 참가하였다. 권용이는 3월 21일 오후 2시경 편항 장터에 모인 1천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 며 시위 행진하였다. 이때 일본경찰이 시위군중을 향해 권총을 발사하자, 그 는 분노한 시위군중과 함께 주재소 건물을 파괴하고 서류를 파기하면서, 주 재소내에 있는 무기를 가지고 나와서 우물에 버렸다. 그 사이 2명의 경찰은 신덕리新德里 방면으로 도망가고, 1명의 일본경찰은 시위군중에게 잡혀 구타 당한 후 독립만세를 같이 외쳤다. 이어서 경찰 사택을 습격·파괴하고 오후 5시 시위군중과 함께 면사무소 로 달려가서, 다시 건물을 파괴하고 비품과 서류를 파기하는 등 이튿날 새벽 3시경까지 독립만세시위를 하고 자진 해산하였다. 이로 인해 권용 이는 체포되었으며, 이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 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83쪽,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 3卷 408·409쪽,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346· 1348·1351·1355쪽. 5. 권유현權有鉉 : 1876. 2. 30~ . 유시연柳時淵·정해일의진鄭海日義陣에 가담 하여 경북 안동·풍기·순흥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먼저 권유현은 1907년 유시연의진에 투신하여 음력 12월 17일 안동군 임 동면에서 일인 순사 16명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후 1909년 음력 정 월 정해일의진으로 옮겨 음력 2월경 순흥군 북면北面에서 헌병보조원과 교전하였다. 이렇게 그는 지속적인 의병항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피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