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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 청송의 독립운동사 ❚ 독립유공포상자 열전 1. 강진선姜進善 : ~1908. 1907년 8월 안동 진위대鎭衛隊가 해산되자 부하 200명과 거의하여 안동·진보·청송·의성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그후 1908년 4월 24일 일경에게 피체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卷 589쪽,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 報勳處) 第3輯 577쪽. 2. 권복규權復奎 : 1850. 12. 27~1925. 2. 15.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의병활동 을 전개하였다. 1896년 3월 안동의진의 소모장인 유시연柳時淵이 청송에 들어와 군기를 요구하고, 외지에서 거의를 촉구하는 격문이 전해지자 유 림들은 토적복수討賊復讐를 기치로 의진결성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청 송향교에 유림 200여 명이 모여 거의를 결의한 후 심성지를 대장으로 추대하고 진용을 갖추었다. 권복규는 의진결성의 논의과정에서부터 진용 편성에 이르는 실무를 담당하였다. 1896년 5월 14일 청송의진은 김상종金象鍾 및 김하락의진金河洛義陣과 연 합하여 감은리甘隱里 뒷산에서 관군 7∼8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계속해서 마평馬平과 경주 인부人夫 등지에서 교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전하였다. 같은 해 5월 청송의진은 좌익장 권성하 등으로 하여금 3초哨 의 군사를 이끌고 영덕의진을 지원케 하는 등 인근지역 의진과 연계하여 활동하기도 하였으나, 고종의 해산 조칙에 따라 해진解陣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赤猿日記(毛筆草本). 3. 권영만權寧萬 : 1877. 3. 15~1950. 4. 6. 1915년 우재룡禹在龍·양제안梁濟安· 김한종金漢鍾·엄정섭嚴正燮·김경태金敬泰 등과 함께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결성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