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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 청송의 독립운동사 는 비극을 맞았다. 아마 청송에서 배출된 인물로는 근현대사를 통틀어 이만한 거물급 인사를 찾기 힘들 것이다. 청송인들이 펼친 활동을 정리하면, 지리적이거나 경제적인 악조건을 무릅쓰고 대단히 많은 독립유공자를 배출했다는 특징을 찾을 수 있다. 현재까지 독립유공자로 포상된 인물이 80명을 넘는다. 이런 숫자는 조 그만 군 단위지역으로는 전국적으로 극히 상위에 드는 것이다. 대개 군 단위로 헤아린다면 평균치가 30명 정도이다. 경북지역의 경우는 다른 지역보다 많아서 평균치가 50명 정도 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청송 은 그 두 배 가까운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청송출신 독립운동가 가운데 유공자로 포상된 인물은 전기 의병에 집 중되어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의 활동을 담아낸 적원일기赤猿日記 때문 이기도 하지만, 청송의 유림들이 역사적인 책무를 다하려 나섰던 책임 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후 간간이 단절되는 시점도 있었지만, 항일투 쟁은 지속되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새로운 인력을 양성하여 새 시대에 대처하려는 시도가 부족했다는 사실이다. 국권상실기에 새로 운 인재를 양성하지 못한 일은 해방 이후 인재 빈곤현상을 가져오기도 했다. 국권상실기에 펼쳐진 청송인의 민족운동을 정리하면서, 한 가지 결론 에 도달한다. 역사적 책무를 다한 자랑스러운 청송인들의 활약상을 새 시대의 인재육성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초등에서 고등 학교 과정까지 향토사 교육에 그 내용을 접목시키는 방안이 마련되어 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한 눈으로 보고 배울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외지에 나간 청송인들이 고향을 방문하고 그러한 역사적 공간에서 다시 자랑스러운 고향의 민족사적 의의를 체 험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럴 경우 비로소 현재에도 거듭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