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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 / 청송의 독립운동사 좌익노조를 확대강화하고 우경분자가 개재해 있는 조선노동총동맹 본부 및 가맹단체에 의식분자를 침투시켜 그 행동을 격화시킨다는 것이다.193) 윤자영이 함경도에 잠입하여 활동하던 모습은 1931년 1월 중순에 열 린 제2차 간부회의에 드러난다. 함흥에서 열린 회의에 윤자영을 비롯하 여 김일수‧오산세‧조덕진‧한여옥 등 5명이 참가하였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의 장래문제였다.194)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는 출범한 지 1년 반 정도 지나면서 존폐 의 위기에 봉착했다. 조직 자체의 결함이나 구성원의 문제가 아니라 코 민테른의 지시와 간섭에 따른 상황이었다. 1930년 7월경 코민테른은 극 동부를 통하여 당시 블라디보스톡에 파견되었던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 원회 간부 김규열을 통하여 반공식적인 해체명령을 내렸다. “조선공산당 재건설준비위원회는 의연히 파벌적 색채가 농후하므로 이를 해체할 것이 다”라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이것은 미리 국내로 잠입했던 김일수에게 전달되었고, 1930년 10월에 귀국한 윤자영도 이를 알고 들어왔다. 다만 그것이 공식적인 지령이 아니라, 반공식적인 것이어서, 일단 공식적인 지 령이 나올 때까지 활동을 밀고 나간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제2차 간부회 의에서 윤자영이 말한 “코민테른의 지령은 반드시 해체하라는 고압적인 것도 아니며, 또한 국내에서 열성당원을 규합하여 당기관을 이룩했을 때 에는 구체적인 지시를 하겠다는 매우 애매한 태도이다”라는 표현이 그를 말해준다.195) 따라서 활동의 강도를 높이면서도 윤자영은 코민테른의 지 시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김일수로 하여금 코민테 른의 의향을 확인하도록 했지만, 극동부의 답은 “조선공산당 재건에 관 한 일체의 책임이 중국공산당에 위임되었으므로 그리고 가서 지휘를 받 193) 김준엽‧김창순, 한국공산주의운동사 5, 300쪽. 194) 김준엽‧김창순, 한국공산주의운동사 5, 300-301쪽. 195) 김준엽‧김창순, 한국공산주의운동사 5, 3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