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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1920~40년대의 독립운동 / 2 95 이들이 함경남도 함흥일대를 중심지로 삼은 이유는 노동자층이 형성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함흥은 일제가 식민지세계의 건설이라는 큰 구 도 속에 질소비료공장을 비롯한 중화학공장을 세워 공업단지를 만들어 가던 곳이다. 그곳에는 노동자들이 밀집하게 되고, 따라서 대공장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의 에너지를 수렴하여 동력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투쟁방향이었다. 뒷날 원산과 함흥일대에 태평양노동조합이 거대한 힘으로 존립할 수 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윤자영과 김일수는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를 함흥일대에 정착시 키고 활동을 펴나가는 데 있어 핵심인물이었다. 김일수‧오산세‧조덕진이 각 담당구역의 상황을 보고했고, 윤자영은 “재건파 간부의 결의에 따라 위험을 무릅쓰고 입국한 우리는 만난을 물리치고 목적 달성에 매진하자” 고 격려한 사실이나,190) 제1차 간부회의가 윤자영이 머물던 집에서 열렸 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191) 또 공청책임자로 지정된 오 산세를 이어 입국한 한여옥韓汝玉에게 공청부를 맡기고, 대신 다른 지역을 오산세에게 맡긴 사람도 윤자영이었다. 윤자영은 서울‧상해파의 제휴 가 능성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국내로 잠입하기 전에 이미 만주에서 서 울계의 이운혁 李雲赫이 서울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오산세로 하여금 그를 포섭하도록 지령을 내리기도 하였다.192) 1차 간부회의에서 담임구역을 선정하고 각 부서별로 보고를 마친 뒤, 좌익노조를 확대‧강화시킨다는 방침을 결정하였다. 그 내용에서 당시 윤 자영이 나아가려는 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그들은 당재건운동을 위 한 기초적 세포로서 좌익노동조합을 지하에 조직하고, 각 지방 공장과 직장 및 가두의 첨예분자를 규합하여 세포조직을 행한다고 결의했다. 또 190) 김준엽‧김창순, 한국공산주의운동사 5, 300-301쪽. 191) 김준엽‧김창순, 한국공산주의운동사 5, 300쪽. 192) 김준엽‧김창순, 한국공산주의운동사 5, 300-3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