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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1920~40년대의 독립운동 / 2 89 구단과 명성회는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되고 민족의 독립을 이룩하자는 뜻 에서 함께 거사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거사할 시기는 9기생이 졸업하기 전인 1945년 3월 10일, 일본의 거대한 행사였던 육군기념일로 정하였다. 이날은 러일전쟁 때 일본군이 심양을 점령한 날이다. 학생들은 총을 메 고 시가를 행진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연구단의 단원이 확대되자 학생들은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계획하였다. 그 계획은 안동농림학교의 무기고에 있는 총으로 안동경찰서‧안동헌병파 견대를 기습 공격하여 점령하고 일본인들을 제압하고, 더 나아가 철도와 통신망을 파괴한 후 의성으로 진격한다는 것이었다. 거사 일정은 처음에 1945년 2월 27일로 잡혔다가, 3월 10일 로 연기되었다. 이날은 일본육군기념일 인데, 러일전쟁 때 일본군이 센양[瀋 陽]을 점령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이 날에 각종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으 므로 경비가 허술하리라는 판단 때문이 었다.173) 1945년 2월 초 일제 경찰이 이 계획 을 감지하여 관련자들의 검거에 들어갔 고, 이후 안동경찰서와 경북경찰부는 대 대적으로 단원 체포에 나섰다. 3월 10일 야간에 대대적인 검거에 나섰고, 단원들의 자택과 자취하는 집에서 체포되거나 도피 중에 체포되기도 하 였다. 일제의 검거 열풍은 4월까지 계속되었으며, 단원들은 조사 과정에 서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174) 173) 김희곤, 안동의 독립운동사 , 안동시, 1999, 383-388쪽 참조. 174) 김희곤, 안동의 독립운동사 , 안동시, 1999, 388쪽. <안동농림학교 항일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