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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1920~40년대의 독립운동 / 2 87 정비하도록 했다. 이와 같은 조치는 학교가 더 이상 학생들을 교육하는 기관이 아니라 일제의 침략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군인 양성 기관으 로 변질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학교가 군사 병영으로 변하고 학생들이 강제 징병되는 상황에 서, 일제의 침략전쟁에 강제 동원되어 헛되이 죽기보다는 민족을 위해 싸우다 죽자는 분위기가 학생들 사이에 강하게 확산되었다. 또한 국외 방송의 청취를 통해 일제의 패망을 예상한 학생들이 무력투쟁을 계획하 고 준비하는 비밀결사조직이 전국 곳곳에서 결성되었다. 2) 안동농림학교 명성회와 청송인 1933년 4월 개교된 안동농림학교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발발하 면서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군사교육기관으로 변하였다. 만주군 출신의 일제군인이 학교에 배치되어 군사교육과 근로봉사를 강행시켜 나갔다. 학생들에게 소년비행대‧전차대 지원을 강요하고, 군사훈련과 낙동강 도 강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또 학생들은 일제의 침략전쟁에 필요한 군수 물자를 지원하기 위한 근로봉사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림학교 일부 학생들은 당시 태평양전쟁의 정황을 임시정부가 국내로 보내는 방송을 듣게 되었다. 이들은 곧 일제로부터 조 만간 독립이 될 것이라 믿고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 결과 조선 회복연구단朝鮮回復硏究團(이하 연구단)을 조직하였고, 참모부‧교화부‧신풍 부‧특공부‧의무부‧대외연락부 등을 산하 조직으로 구성하였다. 당시 농림 학교에는 연구단 외에도 명성회明星會라는 비밀독서회가 조직되었는데, 이 두 조직은 연구단으로 통합하였다. 1943년 봄, 조선회복연구단이 조직되기보다 조금 앞서 또 하나의 비밀 단체가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그 해 2월에 사상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