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page

제5장 1920~40년대의 독립운동 / 2 83 되었다. 그 결과 5월 16일에 길림성吉林省 위사현葦沙縣 일면파一面坡에서 윤자영은 같은 상해파 인물인 김하구金河球와 함께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결성에 착수하였고, 최원택‧조봉암‧김동명과 더불어 만주총국을 설치하 였다. 그 본거지를 길림성 영안현寧安縣 영길탑寧吉塔에 설치하고, 동만‧ 남만‧북만에 구역구를 설치하였다. 본부인 총국에 책임비서 조봉암, 조 직부책임 최원택, 선전부책임 윤자영이 핵심이 되고, 중앙집행위원에 김 하구‧김철훈金哲勳‧김용락金龍洛 등이 선임되었다.168)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화요파와 상해파의 결합이라는 점이다. 윤자영은 김하구와 함께 상해파인데, 국내에서 탈출한 화요파의 대표주자 김찬을 비롯해 조봉암이나 최원택이 모두 화요파였으므로, 결국 상해파와 화요파의 연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은 화요파 와 상해파의 결속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데, 여기에는 상해파의 기득권과 화요파의 주도권이 결합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169) 그러다가 윤자영은 신병을 이유로 선전부장직을 사임했는데, 아마도 이것은 표면적 이유야 어떻든 화요파의 주도력에 밀려서 자퇴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그래서 후임에 화요파의 김동명을 앉히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170) 그런데 이 문 제에 대해 다른 견해도 있다. 즉 윤자영이 먼저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을 조직했는데, 화요파가 뒤에 같은 조직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동만지역에서 조직된 윤자영의 만주총국을 무시할 수 없어서 일단 상해 파인 윤자영과 김하구를 참여시키고 윤자영을 집행부의 선전부 책임자로 선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이다.171) 이 추정에 따른다면 처음에 윤자 영을 선전부책임자로 선임했다가 뒤에 화요파 인물인 김동명으로 교체했 168) 坪江汕二 著, 朝鮮民族運動秘史 , 122쪽; 「間島共産黨判決全文」; 崔元澤外 28人 豫審終結決定書 ; 김준엽‧김창순, 한국공산주의운동사 2, 423쪽. 169) 김준엽‧김창순, 한국공산주의운동사 4, 295쪽. 170) 김준엽‧김창순, 한국공산주의운동사 4, 295쪽. 171) 김준엽‧김창순, 한국공산주의운동사 4, 3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