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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1920~40년대의 독립운동 / 2 71 新人同盟會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 단체는 1922년 서울에서 조직 되었던 사회주의운동조직으로 심상완·장병천張炳天·이영李英·신일용辛日鎔 등이 참여하였다. 그 사상체계는 이 단체에 앞서 조직된 무산자동지회無 産者同志會와 유사하여 사회주의운동의 또 하나의 분파조직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인류생활의 공존공영적 진리를 파악하여 민중문화의 건설을 목적으로 한다”는 막연한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실은 극좌의 경 향을 노정하여 레닌(Lenin, N.)의 러시아혁명을 동경하는 공산주의적 노선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러한 성향의 신인동맹회는 1922년 3월 31일 무산자동지회와 통합, 무산자동맹회無産者同盟會로 발전적 해체를 하게 된다. 이 결과 그들 사 이에는 사회주의 사상운동의 분파적 난립을 막고 조직의 정비와 질서의 수립을 위한 하나의 행동규율을 가지게 되었다. 이 단체에서 심상완이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갖추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성을 주도했던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아 그 역할을 대략적으 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단체가 결성된 직후 그는 상해로 망명을 했 기 때문에 뚜렷한 활동을 보여주지 못하였던 것이다. 상해에서 돌아온 이후 그는 1924년에 결성된 조선노동당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고 전 해진다.130) 130)《開闢》1926년 3월, ‘사회운동단체의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