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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 청송의 독립운동사 로 군자금 5만원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령서를 받은 사람들이 군자금 납부에 응하지 않자, 1922년 1월 2일에는 곽종협郭鍾協이라는 이 름으로 독촉장을 발송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2월경에는 조병식趙炳植(현 동 창양)에게 군자금 2만원을 제공하는 사령서를 발송하였다. 조정식‧조 규훈‧황보훈 등에게 보낸 사령서에는 군자금 수납처가 이정희로, 조병식 에게 보낸 것에는 박경종朴敬鍾으로 되어 있다. 박경종은 박상진의 아들 이자 이정희의 사위였고, 이정희는 박상진의 동료이자 사돈이었던 인물 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의용단과 대한광복회의 연결고리를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군자금 모집 사령서의 발송은 이응수‧이대기‧이종국 등이 담당한 것 으로 보인다. 이들이 군자금 모집을 위해 사용한 사령서‧사형선고서‧경 고문 등은 김찬규를 통해 이응수가 받았다.114) 이것을 받은 이응수는 다 시 이대기와 이종국에게 각각 나누어주고, 군자금 모집 대상자에게 발송 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정희‧박경종‧계림여관을 수령인으로 정하면서, 군 자금을 세탁할 수 있는 중간단계로 설정하였다. 즉,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한 역할과 그것을 수합하는 역할, 그리고 이를 정리하여 서로군정서로 보내는 역할이 각각 나뉘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군자금을 모집하는 비밀결사조직에서 많이 활용하는 방법으로 대한광복회의 경우 는 상회를 이용하였으며, 의용단에서는 철공소를 만들어 활용한다는 계 획을 세워 놓기도 하였다. 이들이 보낸 사령서의 내용을 보면 첫째 그들 의 소속을 밝히고 있으며, 둘째, 요구금액을 명기하고 있으며, 셋째 군자 금을 납부할 곳을 밝히고 있으며, 넷째 경고성 문구와 발송자의 성명(가 명)이 기재되어 있었다. 이 경고성 문구는 군자금 모집에 응하지 않으면, 114) 판결문에 의하면 이응수는 1920년 9월경에 김찬규로부터 8장 정도의 사령서 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을 집에 숨겨 두었다가, 이종국‧이대 기와 함께 발송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