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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 청송의 독립운동사 집을 더욱 조직적으로 펴기 위해 1920년 음력 2월 동지인 장응규를 상해 에 파견하였다. 권영만은 군자금 모집활동을 계속하던 중 일경에 피체되 어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8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3) 의용단의 활동과 청송인 의용단義勇團은 1920년 9월에 결성되어 1922년 12월까지 활동한 국내비 밀결사조직이다. 결성 당시의 모습은《동아일보》와《매일신보》을 통해 확 인할 수 있다. 이 기록에 110) 의하면 이 조직을 결성하는데 중추적인 역할 을 한 사람은 김찬규金燦奎‧신태식申泰植‧이응수李應洙 등이며, 이들은 예 전부터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침 1920년 9월 김천에 살고 있던 이응수의 집에서 모인 이들은 김찬규의 발의로 비밀결사를 결성하기로 뜻을 모았던 것이다. 이 자리에서 그들은 동지를 규합하여 유력한 단체를 조직한 후 재외독립운동단체와 서로 호응하고, 국권회복에 종사하기로 결 의하고 단명을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朝鮮獨立運動後援義勇團으로 하는 비 밀결사를 결성하기로 했다. 그리고 신태식은 경북단장을, 김찬규는 경남 단장을, 이응수는 경북총무를 각각 맡기로 하였다. 또한 활동의 목적을 군자금 모집과 단원을 규합하는 것으로 하고 각자 활동하기로 하였다. 이 렇게 결성된 의용단은 활동무대를 경상도로 설정하고, 단원 규합과 군자 금 모집을 추진하게 되었다.111) 이들의 활동은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지원을 위한 군자금 모집과 단원 109) 권영만이 주비단에서 활동한 경위와 자세한 내용은 독립운동사편찬위원 회의 독립운동사자료집 (10집, 1104-1120쪽) 참조. 110)《東亞日報》1922년 12월 30일자;《每日新報》1922년 12월 30일자. 111) 의용단의 활동에 대해서는 심상훈의 「1920년대 초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의 활동과 이념」,《안동사학》8, 안동사학회, 2003, 241-270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