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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 청송의 독립운동사 많았는데 주비단은 이런 경향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체였다. 주비단은 상해임시정부에서 보내온 ‘주비단규칙서’를 바탕으로 조직되 고 활동하였다. 임시정부 존립의 가장 큰 기반은 바로 국내의 국민적 지 지기반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임정은 수립초기부터 연통제의 시행과 교통국을 설치하고 특파원‧공채모집원‧선전원 등을 파견하여 국 내조직기반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군대식 조직을 갖추고 있다 는 특징을 지닌다. 주비단의 중심인물은 이민식李敏軾‧안종운安鍾雲‧이재환李在煥‧소진형蘇鎭 亨‧권영만‧김시현金始鉉 등이다. 이들은 주비단을 조직하기 이전부터 독립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으며, 대부분 대한광복회 활동에 참여한 경험을 가 진 인물들이다.106) 주비단의 중심인물들은 주비단 조직 이전에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던 중 새로운 활동방법으로 전환을 도모하였다. 그것은 상 해임시정부와의 연계를 통해 보다 조직적으로 활동할 것을 결의하고 장 응규張應圭를 상해로 파견한 것이다. 장응규는 소개서와 이민식 등이 마련 해준 여비를 가지고 상해로 출발하였다.107) 장응규는 상해에서 임시정부 요인들을 만나고 임시정부로 부터 주비단규칙서를 가지고 음력 5월에 귀 국하였다. 장응규는 임시정부로부터 경성에서 주비단이라는 단체를 조직 하여 조선독립운동을 전개하라는 지시를 받고 귀국했던 것이다.108) 임시 정부로부터 지시와 주비단규칙서를 바탕으로 1920년 6월 서울 경신학교儆 106) 경상북도경찰부, 高等警察要史 , 1934, 204-206쪽. 107)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32, 國史編纂委員會, 1997, 197-199쪽; 장응규가 상해로 파견될 때 여준현은 당시 상해임시정부에서 활동하고 있던 5촌 조카되는 여운형에게 소개하는 편지를 가지고 갔으며 여비는 안종운과 이민식이 제공하였다.장응규와 여준현은 이웃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친밀 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108) 국사편찬위원회, 「장응규신문조서」,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32, 國史編 纂委員會, 1997, 2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