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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 청송의 독립운동사 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들은 1921년부터 양한위‧권태일權泰鎰(영덕) 등과 함께 임시정부 운동자금모집을 시작하였다. 일제관헌 기록 고등 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 에 의하면 이들은 총 8,920원의 자금을 마련한 것 으로 적혀 있다. 이 가운데 8,000원은 양한위가 개인적으로 마련한 것처 럼 기록되어 있는데, 혼자서 장만하기에는 너무 많은 액수이다. 아마도 계획에 참여하였던 사람이 공동으로 나누어 낸 것으로 생각된다. 이 돈 은 허병률許秉律(경산 하양, 8,000원)과 권태일(170원)을 통해 상해로 전 달되었는데, 나머지 740원에 대한 행방은 확인할 수 없다. 이외에도 이 들은 원활한 군자금 모집을 위해 대한광복회의 방법을 이용하였는데, 조선인 관공리에 대한 암살을 계획한 것이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폭판 을 입수하는데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행방이 묘연한 740원은 조선규가 조달한 것으로 아마도 폭탄을 입수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런데 거사를 실행하기도 전에 일제에 발각되어 ‘제령위반 및 총포화약 취체령 위반’이란 죄목으로 가담하였던 모든 사람이 검거되었다. 고등 경찰요사 에는 ‘폭탄암살음모사건’이란 제목으로 참여자와 계획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101) 101) 경상북도경찰부, 高等警察要史 , 1934, 269-270쪽; 이 사건에 관련된 사람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權寧萬(32세): 경북 영양군 立岩面 屛玉洞(본적) / 부정(주소) / 무직, 元光復會員; 趙氣虹(38세): 경북 대구부 明治町 二丁目 132(본적) / -- 명치정 일정목 62(주소) / 鍛冶職(대장간); 梁韓緯(38세): 경 북 迎日郡 竹北面 斗麻洞(본적) / 충남 沃川郡 靑西面 小溪洞/ 농업; 吳麒洙 (29세): 경북 의성군 義城面 侯竹洞 592(본적) / 부정(주소) / 무직; 金永佑 (41세): 경북 靑松郡 縣西面 九山洞 127(본적, 주소) / 농업, 현서면장; 趙善 奎(32세): 경북 청송군 현서면 구산동 126(본적, 주소) / 농업; 吳進文(26세): 경북 의성군 의성면 후죽동 690(본적, 주소); 權泰鎰(30세): 경북 영덕군 영 해면 이사 불상(본적) / 부정(주소)-權泰馹; 許秉律(32세): 경북 慶山郡 河陽 面 琴樂洞(본적) / 중국 봉천성 이하 불상(주소); 金元植(35세): 경북 安東郡 西後面 金下里(본적) / 중국 柳河縣 三源浦(주소); 金文國(35~6세): 경북 英 陽郡 邑內(본적) / 부정(주소) / 무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