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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1920~40년대의 독립운동 / 2 33 이 심화되었다. 결국 일제의 산미증식계획은 1920년대 이후 소작쟁의가 격화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한편, 일본은 일본자본의 침투를 촉진시키기 위해 회사령을 철폐(1920) 하여 회사설립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완화하였다. 이로써 일본인 자본가 의 투자가 크게 늘어났는데, 1930년 현재 회사자본의 62.4%를 일본인이 차지하고, 한‧일 합자가 30.8%, 그리고 한국인은 6.4%에 불과하였다. 투 자대상은 주로 상업‧공업‧운수업에 치중되었는데, 공업과 관련된 것으로 는 조선수력전기회사에 의한 부전강수력개발赴戰江水力開發(1926)과 함경 도 흥남에 건설된 질소비료회사 등 규모가 큰 것이었다. 한국인이 건설한 회사로서 비교적 대규모의 것은 김성수金性洙가 세 운 경성방직주식회사, 대구와 평양의 메리야스공장, 부산의 고무신공장 등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대부분의 한국인 회사들은 중개상업‧고 리대‧토지투기 등 비생산적인 부분에 투자하여 대자본으로 성장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에 회사가 크게 늘어남으로써 노동자층은 확 산되고 농민‧ 노동자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밖에 일본은 목화재배를 장려하고, 누에고치 생산을 늘려 그 생산 물을 헐값으로 가져갔으며, 광업생산의 80% 이상을 독점하였다. 또 연 초전매제도(1921)와 교통‧체신의 관영사업을 통해 총독부 수입을 늘리 고, 총독부 재정의 80%에 해당하는 액수를 각종 세금을 통해 충당하였 다. 총독부는 크게 늘어난 수입으로 일본인 지주와 자본가를 지원하고 각종 탄압기관을 운영하는 데 지출하였다. 2) 파쇼통치의 강화와 더불어 시작된 전시수탈체제 1929년 세계자본주의의 중심 국가였던 미국에서 시작된 공황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안정되어 가던 자본주의 체제를 크게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