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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1920~40년대의 독립운동 / 2 31 제를 실시하였으며, 1943년에는 식량영단食糧營團을 설립하여 강제 수탈 체제를 완비하였다. 곡물 생산량이 더욱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 과 관리들은 농촌 구석구석을 수색하고 저항하는 농민들에게 폭행을 가하면서까지 곡물을 색출하였으며,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약탈해 갔다. 이러한 일제의 식민정책은 한국인들에게 철저하게 일본인이 될 것을 강요했고, 황민화정책이란 이 름으로 그것을 합리화시켜 나 갔다. 1937년에는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위해 1면 1신사神社 설치를 추진하고, 각종 ‘황국 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를 제창하 도록 강요하였다. 1938년에는 국체명징國體明徵·내선일체‧인 고단련忍苦鍛鍊의 3대 강령 아 래 조선교육령을 개정하여 학교명칭·교육내용 등을 일본인 학교와 똑 같이 만들고 조선어 사용을 금지하였다. 1940년에는 창씨개명創氏改名 제도를 만들어 한국인의 성姓까지도 일본식으로 바꾸었다. 일본식으로 성을 바꾸지 않는 사람의 자식은 각급 학교에 입학할 수 없도록 만들 었다. 1943년에는 다시 조선교육령을 대폭 개정하여 군사교육·노무동 원을 도입하고, 수업연한을 단축하여 학생들을 전시에 동원할 수 있 게 만들었다. 1938년 중일전쟁 발발 1주년을 맞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이 발 족되면서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운동은 중국과의 전쟁 에 대처하고 국가총력전에 대비하여 국민운동의 통제를 강화하고 정보 선전의 필요로부터 거국일치·진충보국盡忠報國‧견인지구堅忍持久·내선일 체 및 황국신민화라는 목표를 갖고 시작된 것이었다. ‘국민정신총동원 <신사참배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