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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3·1운동 / 223 < 윤자영 신원카드> 윤자영은 학생대표들이 거사를 준비하는 동안 핵심부에서 움직였다. 민족대표와의 연합전선 형성에서 전문학교 학생대표들의 위상은 상당히 높은 것이었고, 윤자영도 그러한 위치에서 활약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 히 시위가 막상 시작되자 전체를 이끌어간 것이 바로 학생들이었고, 전 문학교 학생대표가 최고지도자였다. 그 가운데 윤자영은 거사 당일에 김성득과 함께 경성전수학교 학생들에게 선언서 배포 임무를 수행하였 고, 종로 부근에서 시위와 독립만세 제창을 주도하였다.88) 이로 말미암 아 일제경찰에 체포된 윤자영은 11월 6일에 경성지방법원에서 1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비록 1년형이라 했지만, 실 제로는 3‧1운동 직후에 체포된 것으로 짐작되므로 출옥하던 1920년 5월 27일까지 1년 3개월을 감옥에서 고생하였다.89) 88) 「尹益善等事件判決文」. 89) 서대문형무소에서 만들어진 「수인카드」에 출옥 날짜가 1920년 5월 27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