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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3·1운동 / 205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또한 “김만천은 현서(화목) 만세운동이 일어나기 전, 각지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조현욱‧김기수에게 알렸으며 이규백‧신태휴를 만 나 그 사실을 말하고, 3월 26일 일제히 봉기할 것을 사전에 밀의 하였다” 고 전한다.66) 이는 현서(화목)에서의 만세운동참여가 우발적‧충동적참여 가 아니라는 증거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의 마음 밑바닥에는 출세를 위한 현실인식과 민족의식이 양립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이 런 의식은 몇 명의 증언에 의해서도 확인되고 있다.67) 현서(화목) 만세 운동에서의 김만천에 대한 평가는 새로운 자료를 토대로 정리될 때까지 미룰 수밖에 없다. 4. 청송(면) 만세운동 청송(면)에서도 세 차례에 걸쳐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는 기록이 나온다. 3월 21일 오후 2시경, 군청 앞에서 수백 명이 모여 만세를 부른 후 시가 지를 행진하다가 강제 해산을 당하였고, 25일에는 밤 8시경 소재지 뒷산 (필자 주; 방광산)에서 봉화를 올려 각 면에 신호를 보내자 이에 호응한 66) 李相龍, 靑松人物錄 , 가람출판사, 1982, 30쪽. 67) 증언 1; 만세시위 당시, 청송경찰서장이 김만천에게 “너는 있어도 안되고 없어도 안될 놈이다”라고 말했다(김경호 증언, 김만천의 女, 88세, 2004. 8. 13, 안덕면 덕성리 자택). 증언 2; 김만천이 피의자를 잡아오는 도중에 일부러 못에 떠밀어버리고는 적당히 풀어 주었다고 말함. 또 김만천이 경찰서장을 업고 개울을 건너야 할 일이 있었을때 일부러 미끄러지는 척하여 물에 빠뜨렸다고 말함(청송 군 안덕면 복동 소재 ‘노인회안덕면분회’ 경로당, 2004. 8. 13). 증언 3; 김만천이 안덕면장 재직시, 일본인 군수가 김만천에게 왜 먼저 인사를 안하느냐고 질책하자 내가 왜 먼저 인사해야 하느냐며 반항한 뒤 면장을 그만 두었다고 말함(안덕면 복2리, 사공용, 84세, 2004. 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