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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3·1운동 / 203 청송경찰서에서 출장 나왔던 한국인 경부 강용건姜龍乾을 비롯한 순사 3명 은 시위대를 가로막고 해산할 것을 명령했다.62) 그러나 시위군중은 이에 굴복하지 않았다. 시위대와 일경의 대치상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오히려 군중들은 더욱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때 말을 타고 시위대열을 진두 지휘 하던 조병국은 한국인 경부에게 “너희들은 조선사람이 아니냐, 국권회복 의 거사를 저지하려는 것은 괘씸한 일이니 먼저, 저놈들을 죽이자”라고 호통을 쳤다. 군중들이 이에 호응하여 시위가 더욱 격렬해지자 다급해진 경부는 마 침내 공포를 쏘기 시작했다. 공포에 놀란 군중들이 약간 주춤한 틈을 이용하여 일경은 조병국이 탄 말의 말꼬리를 낚아채 그를 떨어뜨렸다. 조병국이 체포되자 시위군중들은 더욱 격분했다. 군중들은 조병국을 구 출하기 위해 그들을 포위하여 압박해 들어갔다. 이때 순사 한 명을 대동 하고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나왔던 청송경찰서 서장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 는 드디어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총격에 시위군중들은 흩어지기 시작 했으며 그 와중에 4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일경은 만세시위 주동자 4명을 체포하였으며, 시위에 사용한 태극기 약 일백 개를 파기하고 17개 를 압수했다.63)이때가 오후 6시쯤이었다. 청송에는 이날의 현서(화목)만세운동과 관련하여 김만천金萬千에 대한 일설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그 당시 현서(화목)주재소에 근무하는 62) ‘警部’는 일제시대, 현 총경급인 ‘警視’ 바로 아래 계급에 속하는 경찰하급 간 부이다. 친일부류가운데 ‘憲兵 伍長’과 ‘警部’가 있는데 전자는 군인이지만 민간인 정치 사찰까지 겸하고 있는 일본 헌병하사관 ‘겐뻬이 고죠’이고 후 자는 ‘귀신같은(잡는) 警部’ 라는 뜻의 ‘오니 게이부’[鬼 警部]이다. ‘警部’는 특히 사상범 취조에 유능한 솜씨를 발휘하는 헌병 오장과 더불어 일제시 대 악명을 떨친 일본의 하수인으로 각인되어 있다. 63) 慶尙北道警察部, 高等警察要史 , 1934, 35-36쪽;《大邱每日新聞》1982년 4월 22일자, ‘抗日獨立運動史’ 특집기사;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제3권, 4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