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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 청송의 독립운동사 시장으로 향했다. 이때 조병국은 말을 타고 가면서 이들을 지휘하였다.60) < 조병국 기념비> 이처럼 현서(화목)에서의 두 번째 만세운동은 조병국에 의해 주도되었 다. 이들이 면소재지에 있는 장터로 가는 도중, 길에 구경나온 군중들도 호응하며 시위 대열에 가담하였다. 시위행렬이 장터 근처 천변(냇가)에 이르렀을 때 군중은 5∼6백여 명이나 되었으며, 이들은 이형이 나누어 준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부르면서 질서정연하게 대오를 지어 행진해 갔다.61) 60) 慶尙北道警察部, 高等警察要史 , 1934, 35쪽. 61)《大邱每日新聞》1982년 4월 22일자, ‘抗日獨立運動史’ 특집기사; 獨立有功者 功勳錄 . 현서(화목) 천변에 모인 시위 군중의 숫자가 일제 측 기록인 高等警察要史 에는 400여명으로 나오는데, 이 숫자는 최소의 인원으로 축소한 기록이며, 실제의 인원은 그 이상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