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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3·1운동 / 195 2. 진보장터 만세운동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논의는 현서에서 먼저 시작되었지만 청송군에 서 첫 만세 함성이 울 려 퍼진 곳은 진보장터 였다. 진보 만세운동은 권태원權泰源과 이촌구 세군교회(이하 이촌교 회)가 중심이 되어 일 으킨 시위였다.45) 권태 원은 3월 25일 오후 2시 경, 구세군교인 30여명을 이끌고 300여 미터 거 리에 있는 진보장터에서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주도했다.46) 이날 시위에 서는 시장주변에 있던 군중들까지 합세하여 300여명이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47) 그러면 진보인도 아닌 권태원이 어떤 연유로 진보시위를 주도할 수 있었을까? 시위 주동자인 권태원은 영덕군 지품면 낙평에 사는 구세군 참위(사관) 로서 영해‧영덕 만세시위를 논의하고 계획한 핵심 인물이었다. 3월 18일 45) 일제가 조사한 3‧1운동 당시 경상북도의 종파별 상황은 다음과 같다(<독립 운동사자료집> 제6권, 602-606쪽). 가. 미국 장로파 - 교회당 수 284, 신도 13,910. 나. 불란서 천주공교 - 교회당 수 26, 신도 7,988. 다. 구세군 - 교회당 수 18호, 신도 429. 라. 불교 - 사찰 및 포교소 수 163개소, 신도 27,680. 46) 慶尙北道警察部, 高等警察要史 , 1934, 35쪽;《大邱每日新聞》1982년 4월 22일자, 3면, 특집기사. 47) 李炳憲 編, 3‧1운동비사 , 三‧一同志會, 1966, 925쪽. < 진보장터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