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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 청송의 독립운동사 제4절 청송인의 만주망명과 독립운동 만주지역으로 망명하여 민족운동을 전개한 사람 가운데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는 박영산朴榮山(이명; 병곤炳坤)과 남우락南佑洛(이명; 우락 禹洛) 뿐이다. 1910년 국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많은 인사들이 만주지역으 로 망명의 길을 선택하는데, 청송 인근지역에서 그러한 양상을 보여주었 다. 아마도 청송지역의 많은 지사들이 국권회복과 독립이라는 염원을 안 고 만주로 기약 없는 길을 떠났겠지만, 현재로서는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남우락의 경우도 활동 내용을 전혀 파악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박영산의 활동을 중심으로 청송인이 만주지역에서 전개한 민족운동을 정리할 수밖에 없다. 그는 1887년 태어나 수십 년 동안 향리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1909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는 한족 회 韓族會에서 활동하였다. 그가 활동하고 있던 이 단체는 1919년 4월 초순 이상룡李相龍 등이 중심이 되어 유하현柳河縣 고산자孤山子에서 조직한 한 인자치기구이다. 이 단체에서는 재만동포들에 대한 자치활동을 효과적으 로 전개하기 위하여 유하현 삼원포 三源浦 시가에 본부인 중앙총부中央總部 를 두고 그 최고 책임자로 이탁李鐸을 임명하였다. 그리고 서무사장 김종 훈金宗勳‧사판사장 이진산李震山‧학무사장 김형식金衡植‧재무사장 남정섭南 廷燮‧상무사장 김정제金定濟‧군무사장 양규열梁圭烈‧내무사장 곽문郭文‧검사 감 최명수崔明洙 등을 두어 재만동포의 치안·재무·사법·행정 등을 담당하 게 하였다.28) 한편 박영산이 활동한 한족회는 지방자치조직도 체계화하였다. 당시 한 족회의 지방 조직은 유하현·통화현通化縣·흥경현興京縣·환인현桓仁縣·집안현 28) 한족회의 조직과 활동 등에 대해서는 서중석의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역사비평사, 200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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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절 청송인의 만주망명과 독립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