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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1910년대의 독립운동 / 163 제3절 1910년대 청송의 독립운동 1. 의병과 계몽운동의 갈등과 합류 시도 1910년대는 한국독립운동사에 있어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던 시기 였다. 국권상실이라는 상황으로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하던 많은 인 사들이 망명이라는 길을 선택하여 만주로 이주했으며, 독립운동 기지건 설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한편 국내에서는 일제의 무단 통치 아래 표면적인 활동이 억압을 받으면서, 점차 비밀조직으로 전환해 나갔다. 이러한 활동은 의병항쟁과 계몽운동을 계승한 단체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일제에게 강점당하기 이전의 항일투쟁은 대체로 두 계열에 의해 독자 적으로 추진되었다. 일제의 탄압을 직접 몸으로 부닥치면서 무력을 사용 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의병항쟁과 사람과 자본을 길러 대항하자는 구국 계몽운동이 그것이었다. 의병항쟁이나 계몽운동은 모두 국권회복 또는 독 립이라는 같은 목적을 갖고 있었지만, 방법상의 차이 때문에 갈등을 빚기 도 하였다. 물론 방법상의 차이야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보다 심각한 문 제는 서로의 방법과 이념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즉, 의병항쟁 의 주역들은 위정척사사상이나 군주사회를 회복하려는 복벽론復辟論을 이 론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반면에 계몽운동가들은 민주주권사회와 공화정 치를 그 이념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두 계열 사이의 갈등은 점차 심각해져만 갔고, 급기야 의병항쟁의 인 사들이 계몽학교를 습격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에 맞선 계몽운동가들 은 언론을 통하여 의병항쟁의 성과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계열 의 운동이 국권상실이라는 국가적 굴욕상황에서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게 되었다. 결국 이들은 민족독립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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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절 1910년대 청송의 독립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