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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1910년대의 독립운동 / 153 합법적으로 계몽운동을 전개한 단체나 학회들과는 달리 1907년 4월경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삼은 신민회新民會가 조직되었다. 신민회는 비밀조직 체였으나, 그 활동은 학교를 설립한다든가 아니면 학회를 조직하는 등 공 개적인 것이었다. 즉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시키고, 교육기관과 상 공업기관의 운영을 통하여 교육과 국민경제를 도모하는 것이 주된 활동 이었다. 그러나 신민회의 활동은 1910년 12월 일제가 조작한 ‘105인사건’ 으로 관계자들이 체포됨으로써 중지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10년 국 권을 상실한 이후 신민회는 일제와 투쟁하기 위한 대규모의 국외독립군 기지건설을 주도하였고, 이에 따라 많은 독립운동가를 만주를 비롯한 국 외지역으로 망명시켰다. 이외에도《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제국신문》‧《만세보》‧《공립신 보》등의 신문,《대한자강회월보》‧《대한협회월보》‧《서우》‧《호남학보》‧《서 북학회월보》등의 학회지가 발행되면서 언론을 통한 계몽운동도 활발하 였다. 출판물 보급은 계몽운동의 중추적인 역할 가운데 하나였는데, 근대 학문의 소개에 주된 목표를 두었다. 특히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에 관한 서적들은 새로운 학문에 대한 소개와 계몽의 의미를 지녔던 것이다. 또한 국채보상운동, 신문화‧신문학운동, 국학운동, 민족종교운동 등 다양한 형 태로 계몽운동이 펼쳐졌다. 계몽운동은 단순히 실력을 양성하여 국권을 회복한다는 목적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국권상실 이후 민족운동의 역량 과 재원을 확보했다는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2. 청송의 교육구국운동 1) 교육구국운동의 확산 배경 유교적 전통과 규범이 강하던 경북지역에도 정부와 선각적인 개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