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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1910년대의 독립운동 / 149 1898년 민영환이 설립한 흥화학교興化學校가 대표적인 경우인데, 초기에는 그 숫자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을사조약 체결 이후 교육을 통한 국권회 복을 목적으로 전개된 신교육운동의 확산으로 전국적으로 상당히 많은 학교가 설립되었다.3) 비록 재정부족으로 오래 유지되지 못한 소규모의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근대학문의 수용과 보급에 절대적으로 공헌하였 다. 초등보통교육을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었지만, 고등‧전문과정의 학교 도 적지 않았다. 지역적으로는 관서지방에 전체 사립학교의 2/3 이상이 집중되어 있었으며, 경북지역에는 141개교가 설립‧운영되고 있었다.4) 사립학교의 설립이념은 국권회복‧개명‧부강‧ 삼육(지육‧덕육‧체육) 등이었으며, 민족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보여줄 수 있는 교과서를 채택 하였다. 을사조약 체결 이후 사립학교의 교육 은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국권회복의 의지를 강 조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던 것이다. 체육시간 에는 대부분 군사훈련 과정에 쓰이던 병식체조 兵式體操와 훈련이 주를 이루었다. 이 같은 사립학교의 증가로 말미암아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었던 것은 교과서와 교사의 부족이었다. 따라서 민간에서 각종 교과서가 편찬되고,5) 단기간에 교사를 양성하는 기관이 3)《大韓每日申報》1910년 8월 7일자, ‘學校數爻’; 1910년 7월 1일 현재 학부의 조사에 의하면 전국의 공‧사립학교의 수는 총 2,237개교였으며, 이 중 2,082개 교가 사립학교였다. 4)《官報》第4756號, 1910년 8월 13일, ‘彙報’. 5) 경북지역에서 교과서를 편찬하고 인쇄한 대표적인 단체로는 ‘大邱廣文社’를 들 수 있다. 대구광문사는 신교육을 보급하고 학교를 설립한다는 취지 아래 1906년 1월에 설립된 단체다. 주된 활동은 시대에 적합한 동서양의 서적을 번역‧인쇄 < 《대한매일신보》1910년 8월 7일자 ‘학교수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