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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장 의병항쟁 / 131 ⑥ 박인화부대(박처사朴處士) 경북 안동 사람으로 국권회복을 위해 안동에서 기의하여 의병 300명을 인솔하고 영양‧진보‧안동‧의성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9월 대구경찰서에서 안동분서로 가는 일본순사 일행을 납치 살 해하였고,241) 1908년 1월 박인화의 부하 이화서李和瑞는 안동 편항鞭巷에 서 자위단원에게 군자금을 강요하였다. 그후 예안‧안동‧의성‧영양‧청송 등지에서 활동하였다.242) 1908년 4월 28일 안동군 대곡리 부근에서 부하 20명과 함께 일본군 토 벌대에 타격을 받고 잠복하고 있던 중 1908년 5월 신돌석의 부하를 자처 하는 밀정에 의해 관통상을 입고 피살되었다.243) 241) 國史編纂委員會, <大秘收 第902號의 1 隆熙 2年 5月 9日>, 「폭도에 관한 편책」, 韓國獨立運動史 資料 11(義兵篇 Ⅵ), 정음문화사, 1983, 48쪽. 242) 國史編纂委員會, <甲 第63號 隆熙 2年 2月 20日>, 「폭도에 관한 편책」, 韓國 獨立運動史 資料 9(義兵篇 Ⅱ), 정음문화사, 1983, 161쪽 및 國史編纂委員會,<步 兵 第12旅團司令部 守發 第103號 隆熙 2年 4月 9日>, 「폭도에 관한 편책」, 韓國獨立運動史 資料 10(義兵篇 Ⅲ), 정음문화사, 1983, 231쪽. 243) 國史編纂委員會, <大秘收 第902號의 1 隆熙 2年 5月 9日>, 「폭도에 관한 편책」, 韓國獨立運動史 資料 11(義兵篇 Ⅵ), 정음문화사, 1983, 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