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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 청송의 독립운동사 다.206) 산남의진은 1908년 7월 의병장 최세윤이 피체된 뒤에도 일본군경의 토벌에 대응하여 경북의 동남부 일원에서 수많은 전투를 치루었다. 일경의 추격을 받으며 의병은 마지막으로 이곳 고와실에 들어 왔다. 곧이어 추격하 던 일본군은 이 마을로 의병이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주위를 포위하였다. 누런 군복을 입은 경주‧영천‧의흥‧청송의 일본군 수비대 합동토벌대는 마을을 포위하고 사격 을 가해 왔다. 포위공 격을 받게 된 의병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 망하였다. 당시 청송군 부남면 출신의 배연집은 일경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였다. 1985년 고 와실에 거주하던 김재 명씨(70세)의 증언에 의하면 그 때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당시 청송 부남면 출신의 의병장 배연집은 일경을 피해 도망하던 중 김 재명씨의 종조모 화회 풍산유씨가 명(木花)잗는 방으로 뛰어 들게 되었 다. 풍산유씨는 쫒기는 배의사를 앉은자리 뒷편 이불속에 피신시켰다. 뒤 따라 들어 온 일본군이 도망치던 의병의 행방을 묻자 유씨는 턱으로 뒷 문을 가르키니 배의사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배연집의병장은 일면 배포수로 통하던 역사로서 산남의진에 참여하였다. 그 후손 배수용씨는 현재 청송군 부남면에 살고 있다. 이리하여 배의사는 그 은덕을 잊지 안 206) 고와리는 400여 년전 경주김씨가 들어와 정착한 곳으로 현재 30여 호가 살고 있다. 고와리는 뒤로 老萊山, 앞으로 紫霞山이 둘러 싼 첩첩산중의 마을이며, 마을 앞으로 白石灘이 흐르고 있다. 일찌기 이곳은 의병장 신 돌석이 활동했던 지역이기도 했다. < 고와실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