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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 청송의 독립운동사 * 참고 : 山南倡義誌 上‧下에 의거하여 작성함, 山南倡義誌 에 沈日之로 기록되어 있 으나 靑松沈氏石村公派譜 에 근거하여 沈一之로 정정하였음. 성 명 본관 출생거 주지 경 력 활 동 비 고 沈智國 靑松 靑松 서종락부대에 참가, 都炮將 고와실전투에서 패전 未詳 南文熙 景賢(자) 英陽 靑松 거성 1906 남석구와 산남의진 종군 영덕전투 후 석구와 청송에서 활동 未詳 趙鏞河 鵬卿(자) 咸安 靑松 安德 1907 귀향, 서종락부대 참가 隱居 朴文先 密陽 靑松 縣東 1907 귀향, 서종락부대 참가 未詳 薛奉文 靑松 1906 산남의진에 종군, 從事 未詳 산남의진의 진용은 산남창의지 의 「제공실기」나 산남의진유사山南義陣 遺史 의 열전을 통해서 살펴 볼 수 있다. 산남창의지 에 등재된 장병의 수는 201명이며, 산남의진유사 에 등재된 장병의 수는 244명이다. 이들 은 산남의진에 참가한 1천여 명중 확인된 장병으로 전직 관료 및 지방 유생을 비롯하여 해산군인‧포수‧농민들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186)이 진 용도 직접 전투에 참가한 의병과 물적으로 후원하는 각지의 부호로 구분 할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영천‧청송‧영일‧경주 등지에서 참여하고 있으나, 1908년 2 월 이후 지역분대를 통한 지구전을 전개하면서 경상북도의 남부지역 각 처에서 참여하게 된다. 영천을 중심으로 청송‧경주 등지의 양반유생들이 마을을 단위로 한 일족을 대오로 편성하여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고, 각 지역분대의 경우에도 지역책임자인 지방유생을 중심으로 대오를 형성하 고 있다. 186) 山南倡義誌 卷之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