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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남지역의 의열투쟁과 지역성 119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선 밀양지역의 객관적 조건을 살펴본 이후 주 관적 조건인 인적 관계의 중층적인 연결고리를 편의상 구분하여 살펴보 도록 하자. 밀양지역은 밀양강과 낙동강에 의해 충적된 비옥한 토지 때문에 개항 이후 낙동강과 경부선을 통한 일본인들의 내륙 진출이 러일전쟁 이전부 터 추진되었다. 더불어 대규모의 일본인 농촌이민도 추진되는 등 일본인 식민회사와 대지주의 토지 침탈이 이른 시기부터 가속화되었던 곳이었 다. 7) 특히 밀양군의 중심지역인 밀양면과 낙동강의 수운 중심지인 삼랑 진은 경부선의 건설과 함께 일제시기 이전부터 일본인 및 일본인 대지주 의 토지침탈이 진행되고 있던 곳이었다. 8) 더군다나 밀양면과 삼랑진 사 이의 상남면은 낙동강의 지류인 밀양강과 낙동강의 사이에 위치한 약 30 리의 충적토로 토지가 비옥하여 농업경영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다만 두 강이 자주 범람하여 수해가 빈번히 발생했고 이 때문에 아직 개간하지 못한 땅이 대부분이었다. 9) 그래서 강 오른쪽 낮은 구릉을 중심으로 조선 인 마을이 존재했고 그 인근의 땅만 조선인들이 경작했다. 이와 같은 점 을 일찍부터 조사하여 간파한 일본인들은 러일전쟁을 전후하여 본격적 으로 이 지역에 진출하여 수리시설을 설치하고 토지를 개간하여 소유하 기 시작했다. 7) 최원규, 「19세기후반·20세기초 경남지역 일본인 지주의 형성과정과 투자사례」, ꡔ한 국민족문화ꡕ 14,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1999, 95~100쪽. 8) 삼랑진 부근의 일본인 토지 침탈에 관해서는 최원규, 「일제초기 일본인의 사회적 존재형태와 토지소유관계-삼랑진 지역 사례」, ꡔ한국민족문화ꡕ 28, 부산대학교 한 국민족문화연구소, 2006 참조. 9) 최원규, 「日帝의 初期 韓國植民策과 日本人 ‘農業移民’」, ꡔ東方學志ꡕ 77·78·79, 1993, 7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