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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남지역의 의열투쟁과 지역성 147 <그림 6> 부산경찰서 투탄의거 현장과 당시 상황 [비고] 부산경찰서(오른쪽)와 부산부청(위쪽) 폭탄 파열의 현장은 하시모토[橋本] 서장의 책 상과 수부 계원석의 중간 지점으로 폭발 파편은 서장이 앉아 있는 중형 반상 안락의자의 오른쪽 앞 다리를 분쇄했고 의자의 하단을 관통한 파편 은 서장 옆의 중요서류상자의 덮개를 분쇄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또한 천정을 뚫고 이층 사법실 의 마루바닥을 관통하였는데 그때 마침 집무 중 이던 와다[和田] 사법주임의 의자 뒤쪽을 조금 뚫고 지나갔다. 기타 수 개의 파편은 사무실 사 방으로 퍼져 유리창, 의자, 책상 등을 파괴했다. 현장은 범인의 부상 때문에 선혈이 낭자하여 마 루바닥을 붉게 물들여 매우 처참했다. 61) 사진까지 찍고 내려왔다. 거사 당일 오후 1시 박재혁은 오택의 집에 들러 맡겨둔 폭탄을 찾고 오택과 함께 인근의 정공단에서 거사의 성공을 기원 하는 한편, 다시 최천택과 영가대정류소에서 전차를 타고 부산우체국 앞 에서 내려 부산경찰서까지 걸어서 갔다. 59) 전차를 타고 가는 짧은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창밖의 부산항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회상 에 잠겼을 것이다. 함께 갔던 최천택은 용두산공원에서 박재혁을 기다리 기로 하고 박재혁은 오후 2시 반쯤 중국 고서 상인으로 위장하고 부산경 찰서로 유유히 들어갔다. 당시 1층 집무실에서 집무를 보던 부산경찰서 장 하시모토(橋本秀平)와 책상을 두고 마주보는 상태에서 박재혁은 폭탄 을 투하했다. 이 과정에 하시모토는 경상을 입었다고 부산일보 호외는 보도하고 있으나 몇 주 후 경찰에서 물러났고 3개월 안에 사망했기에 육 체적 상처보다 정신적 상처가 심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60) 박재혁도 큰 부상을 입고 현장에서 붙잡혀 부립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부산경찰서 투 탄의거 현장을 “매우 처참하다”고 스케치한 부산일보 호외 기사를 보면 당시의 정황과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알 수 있다. 59) 박원표, ꡔ釜山의 古今ꡕ, 90쪽 ; 박원표, ꡔ鄕土釜山ꡕ, 1967, 237~240쪽. 60) 김삼근, ꡔ부산출신독립투사집ꡕ, 130쪽.